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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이야기

“중구는 여러 친구들의 ‘식기 전에’라는 권고에 의하여 아직도 김이 모룽모룽 오르는 노리끼리한 커피를 들어 입술에 대었다. 닷새 만이다. 한 10년 동안 시베리아 같은 데 유형살이를 하다 돌아와서 처음으로 커피를 입에 대어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도 커피의 한 모금은 그의 가슴속에 쌓이고 맺혀 있던 모든 아픔을 한꺼번에 훅 쓸어내려 주는 듯했다.” *

6·25전쟁을 피해 예술가들이 모여든 부산의 다방 밀다원. 전쟁통에 숨어 있다는 죄책감과 창작에의 갈급함이 어지럽게 뒤섞인 시대의 한 장면에는 커피와 카페가 있었다. 중구와 필자의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김이 모룽모룽 오르거나 혹은 뼛속까지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심으로써 가슴속에 쌓인 슬픔과 울분을 해소한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이 필자 역시 오늘도 커피를 수혈한 뒤 출근을 했고, 바쁜 아침부터 회의, 담소, 식후 휴식 시간의 틈새에서도 커피와 함께했다. 커피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본업을 그만두고 바리스타가 된 사람도 있고, 출근하지 않는 주말이면 카페인 금단증상으로 극심한 두통을 겪는 사람들도 있다. 누군가에겐 밥보다 절실한 커피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유럽인들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한국인들을 에스프레소의 풍미를 모르는 자들이라며 조롱하지만, 커피의 기원은 사실 동방이다. 《월간미술》 2003년 5월호에 실린 〈무슬림 사회의 문화 변동〉은 커피와 카페문화의 발원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서기 850년경, 혹은 11세기 에티오피아 유목민인 칼디는 염소를 산책시키다가 수상한 베리를 발견한다. 베리는 이상한 각성 효과를 지닌 탓에 악마의 열매라고 칭해지며 불에 태워졌는데, 그 타는 냄새가 너무 좋아서 비로소 커피콩으로 탄생했다. 이 커피콩에 물을 탄 것이 커피다. 에티오피아에서 발원한 커피는 13세기에는 아라비아반도, 15세기 중엽에 이르러서는 예멘 수도사들에게 퍼졌고, 15세기 말에는 무슬림 할례자들이 아라비아반도뿐 아니라 터키(현 튀르키예)에까지 커피를 수출하게 된다.

터키 이스탄불은 커피의 잠재력을 다각도로 활용했다. 바로 카페를 통해서다. 16세기부터 유럽 여행자들이 오리엔탈리즘의 환상을 가지고 터키를 방문했을 때 이 카페들이 어찌나 누추해 보였던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카페에 모이는 사람들은 모두가 서민으로 옷차림도 허술하고 별로 일도 하지 않고 하루의 대부분을 게으르게 보내고 있다. 상점이나 길에서 공연히 장시간 빈둥거리며 그들은 카베라고 부르는 콩에서 뽑아낸, 들끓는 뜨거운 검은 액체를 마시며 즐기고 있다. 그것은 사람을 각성시키는 성질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카페는 지위나 종교의 구별 없이 모두가 모여드는 공간이었다고 한다. 담소와 습작, 금단의 이야기들이 이 카페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이루어졌다. 일종의 반정부적 결사가 탄생할 수도 있는 이 악마의 소굴을 정부는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지 17세기에는 카페 금지령을 내렸다가, 카페에 정보원을 배치하는 대신 금지령을 해제했다.

이스탄불의 카페는 유럽으로 옮겨갔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작가들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창착열을 불태웠다. 그중 커피 중독자라 할 만한 사람들이 몇 있다. 오노레 드 발자크는 사업에 실패한 뒤 빚쟁이들을 피할 수 있는 밤에만 글을 쓰느라 하루에 50잔 이상의 드립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10년 전, 기자의 단골이었던 연남동의 한 카페 사장은 발자크가 마셨을 커피를 상상하며 블랜딩한 원두를 판매했었는데, 맛은 쓰고 시고 깊었다. 필자의 하루치 잠을 앗아갈 맛이었지만, 글은 써지지 않았다. 헤밍웨이가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커피를 마시면서 《킬리만자로의 눈(The Snows of Kilimanjaro)》을 썼다는 건 유명하다. 프랑스 벨에포크 시대의 예술가 중 커피와 카페에서 영감을 얻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 일개 커피 애호가인 필자에게도 커피와 카페는 언제나 삶의 중요한 매개물이었다. 한때는 거의 모든 생각의 시작과 매듭이  카페에서 이뤄진 적도 있었다. 그 카페를 구심점으로 수많은 인연과 사건이 우수수 생겨났지만, 세월이 지나자 손가락 사이로 다시 우수수 빠져나가고 말았다. 하지만 커피의 맛은 여전히 그때의 기억을 상기시킨다. 그때의 커피와 카페, 지금 내 앞에 놓여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리고 《월간미술》 2003년 5월호 덕분에 이 짧은 글도 하나 썼다.

*김동리 《밀다원 시대》 문이당 2006

**《월간미술》 2003년 5월호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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