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들은 각기 다른 음높이로 울리고, 파도는 계속되는 소리에 각양각색의 필터를 덧씌운다. 어떤 소리는 끊어지고, 어떤 소리는 이어진다. 바다에서는 양쪽이 원시의 조화 속에서 융합하고 있다. 바다의 리듬은 가지각색이다. 귀로 분별해낼 수 없는 음높이나 음색의 변화와 같은 감각 이전의 리듬, 심장이나 허파의 패턴 혹은 밤과 낮의 패턴과 일치하는 생물적 리듬 그리고 물의 존재 그 자체와 같은 초생물적 리듬을 생각할 수 있다.”*
인류가 최초로 들었던 소리는 무엇이었을까. “소리 환경”을 의미하는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작곡가이자 교육자인 머레이 셰이퍼(Murray SCHAFER)는 그 질문에 대해 “그것은 즐거운 물소리였다”고 답한다. 지금은 다소 낭만적인 소리처럼 들리지만, 바다는 개발의 대상이기 이전에 수많은 생명의 소리를 품고 있는 거대한 악기였다. 비단 물소리뿐일까. 과거의 사람들은 자연이 침묵하고 움직이는 소리를 들으며 계절의 순환을 인지했다. 일례로 제설기가 발명되기 전 북부의 사람들은 고요한 적막에 휩싸인 겨울이 물러갈 때 거대하고 두꺼운 얼음이 쩍쩍 갈라지는 소리를 들으며 봄을 맞이했다.**
그러나 눈으로 본 것만을 믿고 소유하고자 했던 오만이 인간을 미래로 추동했고, 산업화 이후 원시의 소리는 도시의 소음에 묻혀 사라졌다. 소리를 잃어버리는 것이 곧 환경을 잃어버리는 것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대다수의 사람들은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를 둘러싼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탐색하는 것은 곧 우리 주변의 환경을 청각을 포함한 다양한 감각으로 관찰하며 새롭게 인식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리의 기원은 무엇이고 그 소리가 이 시공간과 어떻게 조우하는지, 그리고 결론적으로 소리 환경을 인식하는 것이 생태학적으로 긍정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지에 관한 질문과 답변은 시각예술에서도 지속적으로 행해져 왔다. 특히 팬데믹 이후 환경을 재인식하고자 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제시되고 있는 가운데 사운드스케이프를 활용한 작업들이 눈에 띈다. 이러한 작업들은 사운드를 ‘경험’하는 과정 자체에 방점을 두고, 자연 친화적이고 긍정적인 소리 환경을 만들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제안한다.
스웨덴의 야섹 스몰리키(Jacek SMOLICKI)와 영국의 팀 쇼(Tim SHAW)와 함께 〈2022 워킹 페스티벌 오브 사운드〉를 공동 기획한 독립큐레이터 손세희의 일련의 기획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2022 워킹 페스티벌 오브 사운드〉는 ‘주변을 걷고 들으며 탐구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을 이해하고 돌보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국제 다원예술 페스티벌’이라는 명제 하에 2019년부터 스웨덴 스톡홀름, 영국 에딘버러 등 각지에서 열렸다. 올해는 서울, 캐나다 밴쿠버, 영국 뉴캐슬어폰타인, 온라인에서 동시 진행되었고, 한국 작가로는 진상태, 차미혜, 한재석, 서소형, 김서량이 참여했다.
손세희는 이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서 워크숍 〈소리 탐구〉(2022)를 인천아트플랫폼에서 기획, 진행했다. 페스티벌에 참여한 국내 작가들이 자신의 신작과 연계한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을 진행해 소리의 원리와 소리 환경을 생태학적 관점으로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 워크숍의 주요한 목적이었다. 시민 참여형 워크숍인 만큼 사운드의 원리를 이해하는 기본적인 프로그램부터 점진적으로 소리에 대한 인식을 확장해갈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워크숍 ‘스피커 해킹’은 피드백을 통해 스피커와 조명 등의 오브제들에서 파생된 사운드의 궤적(질서와 무한대의 혼돈이 뒤섞인)을 만드는 한재석이 기획했다. 워크숍의 주된 목적은 스피커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으로, 참여자들은 금속성 소지품으로 개인의 신디사이저를 만들고 연주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각적 이미지보다 어렵고 생소하게 느껴지는 사운드의 발생 원리에 쉽게 접근하도록 하는 것에 목적을 둔 프로그램이었다.
일상적인 소리와 언어, 침묵까지도 오브제로 이용해 청각과 시각의 감각을 탐구하는 서소형의 두 번째 워크숍 ‘소리의 모양’에서는 참여자들이 각자가 기억하는 인상적인 소리의 경험을 글로 나누고, 인천아트플랫폼의 소리들을 직접 채집해 드로잉과 그래픽 스코어로 변환했다. 소리가 단지 청각적인 정보가 아니라 글과 드로잉, 음악 등 다양한 영역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그 결을 달리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세 번째 워크숍 ‘소리 그림 거울’은 영상, 퍼포먼스, 설치 등 다양한 작업을 해 온 차미혜의 신작 제목이기도 하다. 참여자들은 작가의 신작을 함께 감상한 뒤 작가가 작품 제작 과정에서 수집한 자연의 부산물들과 소리, 사진 등의 소품을 가지고 각자의 고유한 순간들을 기록했다. 실물 화상기의 느릿느릿한 움직임, 혼신을 다해 슬라이드를 밀어내는 오래된 영사기의 소리들은 작가가 자연에서 추출해 온 부산물들과 한 몸처럼 얽혔다. 작가의 작업을 이루는 요소들이 분해되어 참여자들이 만든 이미지와 소리로 변주되고 중첩될 때는 마치 다른 세계의 장면이 만들어지는 듯했다.
인천아트플랫폼 내부에서 진행된 워크숍 외에도 손세희는 인천아트플랫폼 오픈스튜디오 기간에 인천아트플랫폼 주변을 산책하며 소리를 듣고 기록하는 시민참여 프로그램 〈가을엔 소리 산책〉(2022)을 기획했다. 필자는 9월 30일, 10월 1일 양일간 진행된 예술가 그룹 SEOM:(섬:)의 ‘해시(海市)’에 참여했다. ‘바다 위에 지어진 도시’, ‘신기루’라는 의미의 ‘해시’는 본래의 모습을 헐고 성마르게 무엇인가를 덧씌워낸 인천 해안동 일대의 지형적 특성과 역사를 담고 있었다. 프로그램은 인천아트플랫폼 주변을 걸으며 네 가지 카테고리의 소리-사라진 소리, 존재하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이어지는 소리-를 듣고 관찰하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개항 이후 인공적으로 바다를 메워 만든 인천아트플랫폼의 지반 위에서 들었던 파도 소리와 화강암 포장도로에 자동차의 바퀴가 마찰하는 소리는 인천의 과거를 상상하게 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차이나타운의 맥을 이어가며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킨 이들의 일상에 겹겹이 쌓인 소리들은 인천의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맥으로 잇고 있었다.
홍예문으로 향하는 오르막부터 자유공원 인근까지 걸으면서는 참여자들이 직접 주변의 소리를 수집했다. 일상의 소리들에 제대로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필자는 그 때 비로소 알게 됐다. 장기를 두며 두런거리는 어르신들의 낮은 목소리, 중국인들의 낯선 억양, 비둘기가 날개를 뒤채는 소리들. 제대로 인지하지 않았던 도시의 소리는 인천의 과거를 환기하는 매개가 되는 동시에 소리가 곧 지속되는 삶 그 자체임을 깨닫게 하고 있었다.
머레이 셰이퍼는 “소리의 모든 연구는 침묵으로 결말을 맺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했듯 침묵은 “알맹이 없는 헛된 상태의 부정적 침묵이 아니라, 충실하고 완벽한 상태의 적극적인 침묵”이다. 침묵은 잠시 어지러운 시선과 소유와 판단의 욕망을 거두고 우리를 둘러싼 일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의미였다. 〈소리 탐구〉의 여정에서 필자는 잠시 침묵할 수 있었고, 익숙한 것을 새롭게 인식하고 모호함 속에서 지속가능성을 찾아내는 예술적 실천에 동참할 수 있었다.
*머레이 셰이퍼, 『사운드스케이프: 세계의 조율』, 한명호 오양기 옮김(홍성: 그물코, 2008), p.34.
**위의 책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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