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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바위쿠르르 <거꾸로 사는 돌> (아트선재센터) 리뷰 _ KTX 매거진 2025.1월호

인간이 질병과 전쟁 등으로 존재의 위기를 겪을 때마다 반대로 지구는 상처를 회복했다. 코로나 19가 지구를 점령했을 때, 전세계적으로 대기 오염 물질과 탄소 배출량이 급감하면서 인도의 뉴델리 시민들은 몇십 년만에 대기오염 없는 맑은 하늘을 보았다. 인적이 드물어진 영국의 해안 도시에는 산양 떼가 내려와 거리를 활보했다.

지구에 잠시 세들어 사는 인간이 빠른 속도로 지구를 좀먹어가는 상황에 대한 고민은 최근 10년간 우리에게 가장 주요한 아젠다 중 하나였다. 물론 예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재난의 시대에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에 관한 논의는 아마도 이 시대의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풀어나가야 할 주제일 것이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돌, 미륵

이끼가 덮인 바위를 뜻하는 ‘이끼바위’와 의성어 ‘쿠르르’를 결합한 ‘이끼바위쿠르르’는 고결, 김중원, 조지은이 구성한 ‘시각 연구 밴드’다. 이들은 자신이 속한 자연과 환경의 일부로서 자생하고 있는 농부들, 열대와 해초 등의 자연 현상을 연구한다. 이들의 작업 태도는 주변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어떤 것도 해하지 않고 자신의 경계를 확장시키는 이끼와 닮아 있다.

이끼바위쿠르르의 첫 번째 개인전 <거꾸로 사는 돌> 역시 그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이 전시에서 이들은 오랜 시간 비바람에 풍화되고 이끼와 풀과 들꽃을 자신의 몸 가장자리에 피워가며 자리를 지켜 온 ‘돌’들의 시간, 그 중에서도 돌로 만들어진 미륵((彌勒佛)의 시간을 거꾸로 더듬어 올라간다. 미륵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든 뒤 56억 7000만년이 지나면 도솔천을 떠나 사바세계에 출현해 중생을 교화한다는 미래불(未來佛)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무상하므로 어떤 것에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남기고 떠난 석가모니의 뒤를 이어 중생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미륵은 일종의 구원자였다. 그만큼 제대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미륵 조각상이 전국 각지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미륵들은 버려졌고,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 돌로 남겨졌다. 이끼바위쿠르르는 이 버려진 미륵들을 전시장 안으로 불러 모아 그들의 몸에 새겨진 과거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미륵의 손바닥, 수인이다. <부처님 하이파이브>는 부처가 중생의 모든 두려움과 근심을 없애주는 수인인 시무외인((施無畏印)의 형상을 한 조각으로, 실제 미륵 조각상의 손을 본떠 캐스팅한 것이다. 미륵의 환대를 받으며 전시장에 들어서면 전시와 동명의 영상작업 <거꾸로 사는 돌>을 만날 수 있다. 이끼바위쿠르르는 과거에는 구원자이자 신앙이었던 미륵이 이제는 수도권 외곽, 논과 밭, 시골과 같은 개발되지 않은 장소에서 발견된다는 점에 주목해 미륵이 발견된 장소를 원경으로 담아냈다. 영상은 도시개발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뼈대만 구축된 쟂빛의 건축물, 산업폐기물과 쓰레기로 가득찬 외딴 곳, 논과 밭, 바다의 먼 풍경을 담아내고 있는데, 그 풍경의 한 켠에 돌처럼 자리한 채 깎여나간 미륵의 모습이 보인다. 버려진 미륵들은 마치 영원히 그 자리에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것처럼 자연과 어우러져 한 몸이 되어 있다. 수없이 개발되고 버려지는 자연 속에 영겁의 시간 동안 녹아들어 어떤 것도 해하지 않는 미륵은 인간을 광대무변한 자연의 일부로 여겼던 동양철학과 산수화의 정신성을 떠올리게 한다.

영상과 대각선 방향에는 영상 속의 논밭에 자리하고 있던 미륵을 실제 크기로 본떠 만든 동명의 조각 <거꾸로 가는 돌>이 있다. 손때가 묻어 깎여나간 코와 인자한 미소를 가진 미륵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그 뒤편으로 조금 전에 보았던 영상 <거꾸로 가는 돌>이 시야에 들어온다. 영상 속의 미륵을 다시 영상 위에 포개어 감상하다 보면 문득 공간은 고요한 사찰로 변모하고, 관람자는 미륵의 눈, 귀, 입, 손바닥에 둘러싸여 미륵이 지나온 과거의 시간을 조용히 따라가게 된다.

미륵의 얼굴 조각에서 시선을 양 옆으로 옮겨 보면, 사찰의 탱화만큼이나 거대한 벽면 드로잉 <더듬기>를 만날 수 있다. 총 16점으로 구성된 이 드로잉은 직접 미륵 조각상에 한지를 대고 그 표면을 숯으로 더듬고 문질러 미륵의 형상과 질감을 살려낸 작업이다. 석상의 재료인 화강암의 거친 표면이 한지 위에  숯의 흔적과 미세한 요철로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얇은 한지 위에 미륵의 시간이 그대로 녹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시장 한가운데 위치한 <우리들의 산>은 한국 석산의 기개와 아름다움을 조각해 만든 상상의 산이다. 지점토와 먹으로 만들어진 석산은 마치 먹을 번지게 하는 발묵법으로 그린 산수화가 조각으로 다시 태어난 것 같다. 이 석산은 대상화되지 않은 자연 그 자체로서, 영상 <거꾸로 사는 돌>의 풍경과 대비를 이루며 작품과 공간 사이의 여백을 적절히 채우고 균형을 조율한다.  

잠시 멈추어 서서 뒤를 돌아보자

이 전시를 마무리하는 영상작업 <쓰레기와 춤을>은 어쩌면 이끼바위쿠르르가 이 전시를 빌어 우리 모두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직설적으로 담고 있는 메시지함과도 같다. 영상의 배경은 아마도 오랜 시간이 지난 먼 미래의 지구, 56억 7000만년 후의 지구다. 미륵은 약속대로 인간을 구하러 지구에 내려왔다. 그런데 이미 인간은 멸종했는지 흔적조차 보이지 않고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운 벌판과 쓰레기들만이 남아 있다. 쓰레기들은 바람에 몸을 맡기고 굴러다니며 춤을 춘다. 미륵은 그것을 그저 바라본다. 그런 미륵의 시선을 따라가며 우리의 비관적인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인류에게 미래는 있을까.

 이제는 어쩌면 과거를 살아내고 모든 시간을 몸에 새긴 자애로운 미륵처럼 우리도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야만 할지도 모른다고, 이 전시는 말하고 있다. 너무도 거창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재난의 시대에 이 전시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버려진 미륵을 공간 안으로 소환하는 것, 그 공간을 미륵의 과거-체험적 시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것, 그럼으로써 인류의 과거와 잘못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우리를 강렬한 미적 체험으로 환기시킬 수 있는 힘을 이 전시는 가지고 있었다.

전시를 기획한 김지나 큐레이터는 “계속 앞으로만 전진하다가 지난 날을 돌아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더 가슴에 와닿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기획 의도를 전했다. 뾰족하게 자신을 소진해가며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발전시키고 문명을 추동할 수 있다고 우리는 믿고 있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탈이 난다. 모두가 잠시 멈추고 과거의 시간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인간이 자신의 잘못으로 극한의 상황에 몰린 지구를 위해 그렇게 해야 하듯, 우리 모두 쉼 없이 달려온 한 해를 마무리하며 숨을 고르고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있기를.

+

지구 환경 문제를 논하는 전시가 필연적으로 직면하는 문제 중 하나는, 전시가 만들어내는 폐기물이 오히려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자가당착이다. 이끼바위쿠르르는 이 문제를 염두에 두고 전시를 만들 때 가장 친환경적인 방식을 택했다. 가령 영상 작업의 경우 블랙박스를 만들지 않고, 블랙박스를 대신해 영상의 집중도를 높일 수 있는 설치 방식을 사용했다. 또한 이전 전시에서 활용했던 가벽을 재활용해 최대한 전시 폐기물의 양을 줄였다. 공간의 적절한 여백과 작업 사이의 균형감 역시 인위성을 최대한 덜어내고 전시의 신비로운 집중도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이끼바위쿠르르: 거꾸로 사는 돌

아트선재센터 스페이스 2 (3F)

2024.12.3-202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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